김학철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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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학철은 1972년생으로,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선수 시절에는 부산 대우 로얄즈, 대구 FC,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특히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2005년 K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은퇴 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코치와 유소년팀 감독을 역임했고, 독일 유학 후 동국대학교 코치를 거쳐 태국과 화성 FC 감독을 맡았다. 화성 FC 감독 시절에는 K3리그 어드밴스 우승과 FA컵 4강 진출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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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1972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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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김학철 |
본명 | 김학철 |
로마자 표기 | Gim Hak-cheol |
출생일 | 1972년 11월 4일 |
출생지 | 강원도 강릉시 |
키 | 178cm |
포지션 | 은퇴 (선수 시절 수비수) |
학력 | 국민대학교 |
선수 정보 | |
유소년 클럽 | 주문진중학교 강릉산업고등학교 |
클럽 | 1995: 대우 로얄즈 1996-2002: 부산 대우 로얄즈 1998-1999: → 상무 (군복무) 2003: 대구 FC 2004-2008: 인천 유나이티드 |
국가대표 | ???: 대한민국 U-23 1998: 대한민국 |
감독 정보 | |
감독 | 2008-2010: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 2010-2012: 인천대건고등학교 2014: 동국대학교 (코치) 2016: 포천시민축구단 2016: 파타야 유나이티드 FC 2017-2018: 화성 FC (코치) 2019-2021: 화성 FC 2022-: 포항 스틸러스 (코치) |
클럽 통계 | |
부산 (1995) | 7 (0) |
부산 (1996-2002) | 117 (1) |
대구 | 35 (0) |
인천 | 125 (0) |
국가대표 통계 | |
대한민국 | 1 (0) |
2. 선수 경력
김학철은 1995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데뷔 초반에는 2군에서 경기를 뛰었다. 1996년 빠르게 1군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1997년에는 김주성과 함께 탄탄한 수비진을 구축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빠른 발과 강한 몸싸움을 바탕으로 한 김학철의 수비력은 황선홍, 서정원, 김도훈 등 당대 최고의 공격수들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뛰어났다.[1]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한 1998년과 1999년을 제외하고 2002년까지 부산에서 활약하며 리그컵 2회 연속 우승(1997년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에 기여했다. 상무 소속이던 1999년에는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2003년 신생팀 대구 FC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여 주장과 간판 수비수로 활약했지만,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났다.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 FC 창단 멤버로 합류한 김학철은 초기에는 베르너 로란트 감독의 전술에 따라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지만, 장외룡 감독 부임 이후 임중용, 이상헌과 함께 강력한 수비 라인을 구축하며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2]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뛰어난 체력과 스피드를 유지하며 팀의 고참으로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한 김학철은 인천의 2005 시즌 준우승, FA컵 4강 2회(2006년, 2007년), 리그컵 2007 4강 진출에 공헌했다. 2008년 11월 9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13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2]
2. 1. 부산 대우 로얄즈
김학철은 1995년 당시 최고의 팀 중 하나였던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가 되었지만, 데뷔 초반에는 좋지 않은 활약을 보여 2군팀에서 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1996년, 빠르게 1군에서 본인의 자리를 되찾으며 주전으로 활약했다. 1997년, 부산의 김주성을 중심으로 한 탄탄한 수비진에서 김학철은 거칠고 과감한 플레이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김학철의 수비력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빠르고 단단한 파이터형 수비수였기 때문에, 상대 공격수들은 김학철을 상대하기 어려워했다. 황선홍, 서정원, 김도훈 등이 그 예이다.[1]상무에서 군 복무를 했던 1998년, 1999년 두 시즌을 제외하고 2002년까지 7시즌 동안 124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리그컵 2회 연속(1997년 아디다스컵, 1997년 프로스펙스컵) 우승에 기여했고, 상무에서 군 복무 중이던 1999년 팀의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경험한 후 2000년 원 소속팀인 부산에 복귀했다.
1996년부터 팀의 핵심 선수로 평가받았으며, 1997년에는 K리그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그 해 부산 대우 로얄즈는 아디다스컵 1997, 프로스펙스컵 1997과 리그에서 우승했다.
2. 2. 대구 FC
2003년 신생팀 대구 FC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팀의 주장 및 간판 수비수로 자리 잡았지만, 35경기에 출전하며 한 시즌 만에 대구에서의 활약을 마무리했다.2. 3. 인천 유나이티드 FC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대구 FC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김학철에게 계속 관심을 보였고, 2004년 마침내 창단 멤버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2] 2004년 당시 인천의 감독이었던 베르너 로란트는 체격 조건이 좋은 중앙 수비수를 기용했기 때문에, 합류 초기에는 선발 출전하는 일이 적었지만 장외룡 감독 부임 이후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였다.[2]장외룡 감독은 임중용에게는 빌드업을, 장신 수비수 이상헌에게는 제공권 싸움을, 그리고 김학철에게는 상대 주축 공격수를 꽁꽁 묶는 맨투맨 수비를 요구하며 인천의 탄탄한 수비진을 완성 시켰다.[2]
김학철은 축구선수에게는 환갑을 넘긴 나이인 30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체력과 스피드에서 상대 선수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팀의 고참으로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인천이 2005년 리그 우승을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2]
하지만 세월이 지나 노장이 된 김학철의 기량도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했고, 인천의 레전드로서 2008년까지 125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2005 시즌 준우승, 2번의 FA컵 4강 진출(2006년, 2007년), 리그컵 2007 4강 진출에 기여했으며 2008년 11월 9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K리그 2008 26라운드 홈 경기를 끝으로 13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2]
3. 플레이 스타일
김학철은 그의 세대 역대 최고 수비수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의 주축 수비수로 리그와 컵 3관왕을 달성했고, 2006년에는 최고참 선수로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K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뛰어난 대인 마크 능력으로 중앙 수비수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K리그 정상급 공격수들을 상대로 막강한 1대1 능력을 보여주며 좌측 혹은 우측의 측면 수비수로도 자주 기용되었다.[1]
김학철은 폭발적인 스피드, 투지, 힘, 1대1 능력, 그리고 대인 마크에 두각을 나타냈다. 수비수 치고는 작은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현역 시절 빠른 스피드와 끈질긴 몸싸움으로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안정환, 박주영 등 K리그에서 내로라하는 공격수들도 김학철의 마크가 붙으면 90분 내내 공을 잡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1]
4. 지도자 경력
2008년 장외룡 감독 아래 인천 유나이티드의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에는 인천 2군팀을 이끌고 R리그 우승을 지휘했으며, 2010년에는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진성욱, 박진수 (축구 선수), 김용환 (축구 선수) 등을 발굴, 지도하며 팀을 수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2년 독일로 축구 유학을 떠났고, 2014년 동국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복귀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16년 태국 프리미어리그의 파타야 유나이티드 FC 감독으로 활동했지만, 팀의 지원 부족과 언어 소통 문제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2019년 K3리그 화성 FC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4. 1. 인천 유나이티드 (플레잉 코치, 2군 감독, U-18 감독)
2008년 선수 은퇴 후 장외룡 감독 아래 인천 유나이티드의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에는 인천 2군팀을 이끌고 R리그 우승을 지휘했으며, 2010년에는 인천의 유소년팀인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여 진성욱, 박진수 (축구 선수), 김용환 (축구 선수) 등 여러 선수들을 발굴, 지도하며 팀을 수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2]4. 2. 독일 유학 및 동국대학교 코치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를 떠나 독일로 축구 유학을 떠났고, 2014년 동국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복귀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4. 3. 파타야 유나이티드 FC
2016년 태국 프리미어리그의 파타야 유나이티드 FC 감독으로 활동했지만, 팀의 터무니없는 지원과 선수들과의 어려운 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인해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4. 4. 화성 FC
김학철의 지도자 경력은 2019년 K3리그 화성 FC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화성 FC는 2014년 K3챌린저스리그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이 없이 중위권에만 머무르는 평범한 팀이었다.
그러나 김학철은 뛰어난 지도력과 색다른 전술로 유병수, 문준호 등 여러 선수들과 함께 K3리그 어드밴스 2019에서 팀에 K3리그 어드밴스 통산 2번째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FA컵 2019 8강전에서 경남 FC를 2:1로 이기고 K3리그 및 K3리그 어드밴스팀 최초로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화성의 기적'이라 불리며 홈에서 열린 4강 1차전에서 수원 삼성 출신인 문준호의 결승골로 수원을 1:0으로 이겼으나, 2차전 원정 다득점의 유리함을 가져갔지만 2차전에서 3:0으로 패하면서 아쉽게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1]
5. 기타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 FC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인 《비상》에 출연하였다.
참조
[1]
웹사이트
<[R-리그 결승> 인천 김학철 코치, "조직력이 우승의 원동력"
http://news.naver.co[...]
Sportal Korea
2009-10-22
[2]
뉴스
9일 은퇴하는 인천 김학철, 지도자의 길로 나선다
http://sports.news.n[...]
뉴시스
200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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